출처 : [자본시장포커스] 페이스북의 가상화폐 도입 발표와 시사점(자본시장연구원, 2019-14호)
지난 6월 18일, 페이스북은 빠르면 2020년 상반기에 가상화폐 리브라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자회사 칼리브라(Calibra)를 설립하였으며, 칼리브라는 전세계 27개 기관과 함께 리브라 협회(Libra Association)를 구성하게 된다. 대형 플랫폼기업의 금융시장 진출은 기존 은행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개인정보유출로 지난 수년간 비난을 받았던 페이스북이 소비자 금융데이터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발표 직후부터 각국 정부와 BIS(국제결제은행: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등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으며, 당장 미 상원에서는 7월 16일에 관련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규제 불확실성이 해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리브라의 성패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당국과 일반 소비자의 가상통화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Libra의 3가지 요소
금번 발표된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크게 ①개방형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폐쇄형 블록체인, ②주요국 법정통화와 연동되는 담보형 코인, ③스마트 계약을 활용한 금융플랫폼 구축으로 요약된다.
개방형으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폐쇄형 블록체인
첫째, 리브라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폐쇄형(permissioned) 방식이다. 블록체인은 온라인 거래내역을 기록한 원장(ledger)을 네트워크 참여자가 각자 저장하며, 합의에 의해 관리·보존하는 시스템이다. 사전 허락이나 동의 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한 비트코인 블록체인과는 달리 리브라 블록체인은 정해진 구성원들에 한해 네트워크의 참여가 허락된 것이다. 다시 말해, 리브라 협회의 멤버들만 가상화폐의 발행과 (필요한 경우에) 소각을 결정할 수 있으며, 시스템 변경 등에 대한 투표권도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불특정 다수의 가상화폐 사용자가 블록체인에 대한 조회와 채굴권까지 가질 수 있는 개방형(permissionless) 블록체인은 탈중앙화 면에서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안정성과 보안 및 확장성 문제등에 있어 불안감을 노출시켰다.
페이스북이 자체 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앙화된 구조를 선택
페이스북이 자체 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앙화된 구조를 선택한 것은 불가피하였다고 보인다. 현재 주요국 은행과 핀테크 기업 등이 추진 중인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에 개방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리브라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다른 결제시스템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다만, 페이스북은 5년 이내에 개방형 블록체인으로 전환할 계획도 함께 밝히고 있다. 개방형으로의 전환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분명치않으며, 단기간 내에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3) 하지만 이 성공여부가 리브라의 장기적인 차별화 전략에 핵심적인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리브라 가상화폐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의 일종
둘째, 리브라 가상화폐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의 일종이다. 비트코인이 지불수단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투자수단으로만 활용되는 배경에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변동성이 있다. 이와는 달리 스테이블 코인은 일반적으로 1개당 1달러로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며, 일명 가치고정형 가상화폐로도 불린다. 코인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기관에 법정화폐를 담보로 예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고정하는 형태도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수년간 글로벌 은행들은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는데, 현실화된 대부분이 스테이블 코인에 해당한다. JP모건의 경우 자체 블록체인 쿼럼(Quorum)을 기반으로 JPM코인을 발행할 계획이다. 법인 고객이 대상인 JPM코인은 미 달러와 1:1로 연동되며 기업 간 해외송금 또는 채권 거래시 결제수단 등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글로벌 은행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검토 내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법인 고객 대상으로 한정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일본의 경우 현금결제 비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대형은행들의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장려되고 있다. 미쓰비시MUFG는 MUFG코인을 발행해 은행고객 일부에 대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5) 예금과 MUFG코인이 전용앱을 통해 일대일로 교환이 가능한 구조로 개인간 송금 및 가맹점 결제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미즈호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QR코드를 활용한 J코인의 발행을 유초은행 등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면 리테일 결제시스템에 대한 가상화폐 도입이 거의 전무한 상태이므로, 시장선도자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페이스북의 리브라 도입은 시의적절하다.
리브라의 경우 기존 스테이블 코인들과는 달리달러 등 주요국 통화와 연동하여 교환가격이 결정
리브라의 경우 기존 스테이블 코인들과는 달리 달러, 파운드, 유로, 스위스프랑, 엔 등 주요국 통화와 연동하여 교환가격이 결정된다. 가격변동성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이 리브라에 대해 언제든 실물통화와 교환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시장의 믿음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경우 부분준비지급금 제도를 활용하여 예금 총액의 일부만 준비하는데 반해, 페이스북은 100% 지급준비를 채택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초기 유통단계에 있어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무브(Move)라는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지원할 계획
셋째, 페이스북은 무브(Move)라는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지원할 계획이다. 스마트 계약이란 계약의 주체가 사전에 협의한 내용을 미리 프로그래밍하여 전자계약서 안에 넣어두는 것을 말한다. 계약 이행 및 검증과정이 네트워크 상에서 자동으로 이루어지기때문에 중개기관의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안정적으로 계약을 실행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은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을 통해 부동산, 보험,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리브라의 무브는 이더리움의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솔리디티(Solidity)와 다소 다른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통해 단순 결제시스템을 넘어서는 금융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다만, 무브의 개발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이어서 어떤 유형의 스마트 계약이 활성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위의 세 특징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의 목표는 다수의 사용자들이 기존 가상화폐들의 장점을 쉽게 누릴 수 있는 금융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대형은행이나 다른 플랫폼기업 등에게서는 볼수 없었던 장기적인 비전이다. 따라서 금번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발표는 가상화폐의 실용화에있어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중앙은행의 고민
일부에서 예측하듯이 페이스북의 리브라가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릴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리브라는 벤모(Venmo)7) 등과 유사한 (해외)송금/결제시스템에 그칠 거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기존 핀테크기업 혹은 글로벌 대형은행과 다른 점은 전세계 실사용자 수가 24억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트코인 관련 뉴스 외에 가상화폐에 접할 길이 없었던 일반 소비자들이 리브라를 통해 그 개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부 비트코인 지지자의 비판처럼 가상화폐의 참정신을 구현하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페이스북의 리브라 도입은 가상화폐 전반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글로벌 은행이나 대형IT기업이 전세계적으로 자체 가상화폐를 도입하는 사업에 대해 보다 전향적으로 될 가능성도 커졌다.
상업은행을 포함한 민간기업들이 자체 가상화폐를 발행하여 국가의 법정통화와 경쟁하는 그림은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주장하였던 자유은행제도를 일부 연상케 한다. 하이에크는 중앙은행이 화폐발행 기능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은행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여 경쟁하는 체계가 보다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앙은행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은행제도가 필요할지 상당한 의구심이 들지만, 관련된 논의는 이전보다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과 BIS, FSB(금융안정위원회: Financial Stability Board) 등의 관련 국제기관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수년전부터 각국 중앙은행은 현금 사용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감안하여 디지털 통화, 이른바 CBDC(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하는 방안을 개별적으로 검토해왔다. 하지만 통화정책에 대한 효과를 고려하는 선에 그쳤던 것이 대부분이며 민간기업의 가상통화 도입을 전제로 한 연구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CBDC에 대한 도입 논의도 향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