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후 다시 찾아 보게된 나의 청약통장
복학을해 휴학을 몇번 하고 5년정도 시간이 지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가졌다. 그리고 또다시 몇해가 지나서 결혼도 했다. 어느덧 나는 30대의 문턱에 서 있었다.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결혼할 당시에는 어느덧 서울살이 10년차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서울에서 내 집을 갖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진지하게 해본적은 없었다.
결혼을 할때 집을 사야한다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으나 부동산에 대해 잘 몰랐던 당시의 나는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집을 갖는것은 조금 더 나중의 내 인생의 과제로 생각했다. 집을 사느라 큰 금액의 대출을 받아버리면 내 삶이 송두리째 은행의 노예가 될것 같은듯한 불안함이 있었고, 대출을 상환하는 이자비용의 부담으로 이제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내 벌이가 구멍뚫린 주머니처럼 술술 새어 버리는 것이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결혼 후 2년이 지나 첫번째 이사를 하였다. 나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빠듯한 예산에 맞춰 살곳을 찾는 일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는 것을 새삼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주머니사정과는 별개로 내집마련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내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레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면서 나도 부동산에,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중 친한 친구중 하나가 부동산 청약에 성공했다. 그 친구는 부동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었던 친구는 아닌데 주위의 이야기를 듣고 생에 처음으로 시도해본 청약신청에서 덜컹 당첨이 된 것이 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좋은 아파트였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30평대로 분양가격만해도 10억이 훨씬 넘는 가격이이었다. 가격을 떠나서 청약통장으로 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단지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가까이 있는 친구를 통해 보았다. 그래서 다시 오래전 내가 만들었던 청약통장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내가 청약통장의 존재를 그동안 완전히 잊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매년 연말정산을 통해 청약통장 납입금액의 40%를 공제받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청약통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번도 청약통장을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목적인 아파트청약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도 몰랐다.
친구의 청약 당첨 소식을 듣고 여러가지가 궁금해졌다. 내 친구는 정말 세상에 있을수 없는 행운으로 강남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당첨되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당시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도 청약에 당첨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당첨된 것인지 매우 이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는 가점제로 당첨된 것이 아니라 추첨제로 당첨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파트청약이 꼭 청약가점 순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는 30평대 일반분양의 40% 정도는 추첨제로 배정을 했었다.
또 흥미로운 사실은 청약 통장에 가입한지는 10년이 넘어가지만 청약통장은 그 그기간을 온전히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만 30세 이후 청약통장 보유기간을 청약가점 인정대상 기간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청약통장을 가입한지 5년이상이 지났지만 그 기간을 가점으로 인정받을 수 는 없었다. 다만 결혼을 30세 이전에 한 경우는 결혼시점부터 기간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청약가점 인정기간이 30세보다 조금 빠를 수는 있지만 요즘 평균 결혼 나이를 보면 크게 유리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그 당시 내 주변의 친구들보다는 내가 청약가점은 단 몇점이라도 더 높았을 것이다. 나는 결혼도 상대적으로 조금 일찍한 편이고 청약통장도 주위 친구들 보다 일찍 만들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내가 가진 청약저축과 다른 청약종합저축을 가지고 있었다. 청약종합저축통장은 청약제도가 바뀌면서 새롭게 나온 청약통장 종류이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최근에야 청약통장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분명 내가 훨씬 이전에 청약통장을 만들어두고 있었지만 청약점수를 계산하는 인정기간 산정에 있어 큰 효과는 없어 다른 친구들과 크게 차이는 없다는 사실은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치 어머니가 챙겨주신 마음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언짢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