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자, 나를 돌아보다 - 1

# 부모님의 선물, 청약통장을 만들다 

 

2006년 10월 군대를 제대하고 잠시 고향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다 다시 복학을 준비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집을 구하느라 정신없던 차에 어머니가 꼭 당부하셨던 일이 있었다. 주택청약통장을 내 명의로 만들어 두라는 것이었다. 청약통장을 만들고 조금씩 저축해두면 나중에 아파트 청약을 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 많은 은행중에서 왜 농협을 갔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교에서 가깝지 않은 농협을 찾아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청약통장을 개설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골에는 농협밖에 없어 어머니께서는 청약통장을 농협에서만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나에게 농협을 찾아가라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오래된 기억이고 당시 나에게 어머니의 심부름 같은 일이었을 뿐이었다. 당시는 나보다 어머니에게 더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이 서울에서 집을 장만할 소중한 기회를 미리 마련해두는 부모로서의 역할로 나중에 자식들에게 크게 감사받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오랜 기간 동안 그 통장에 꼬박꼬박 돈을 넣어 주셨다. 

 

 

 

 

당시 어머니가 나에게 청약통장을 만들도록 한 것은 외삼촌이 청약통장을 통해 서울에 큰 평수의 아파트를 마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였던것 같다. 당시 아파트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모르나 외삼촌을 통해 시골에서 상경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울에 아파트를 가질수 있는 방법을 어머니도 알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외삼촌도 분명 자금사정이 넉넉치는 않았지만 불현듯 찾아온 더없는 좋은 기회였기에 부담은 컸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그 아파트를 가지기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청약통장을 만들기만 했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얼마의 돈이 저축되어있는지도 정확히 일지 못했다. 그당시 어린 나에게 중요하지도 않았고 나의 관심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약통장은 그런 우리들에게 서울에서 아파트 집을 가질 수 있는 꿈을 꿀수 있도록 정부가 주는 혜택이었다. 청약저축은 금리도 높았고 소득공제도 가능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청약통장에 오랫동안 착실하게 저축을 하면 나중에는 자연스레 청약가점도 올라갈 것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면 이 청약통장에 저축한 돈을 통해 아파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적어도 우리가 집한채 마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청약통장의 본질이고 목적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이 아닌 조금 먼 미래의 일이지만..